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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리 아리노리(森有禮-초대 일본 문부대신)가 활약한 메이로쿠사(明六社, 메이지 시대 초기에 설립된
일본 최초의 근대적 계몽 학술단체)에서 한 일이다. ‘교화’(敎化)를 내세운 오쿠보와 ‘발육’(發育)을 말한
후쿠자와 말을 듣고서 모리가 교화와 발육에서 한 자씩을 따 와 ‘교육(敎育)’이라 제안한 것이다.
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‘교육’은 조선에서 썼던 ‘학부(學部)’의 ‘학’과 견주어 볼 수 있다. 조선은 6부 가운
데 하나였던 ‘예조(禮曹)’를 학부라 바꾸고 대한제국(1897~1910) ‘학부령’에서 보듯이 ‘배움(학)’을 써 왔
으나 누에가 뽕을 먹듯 ‘학(부)’이란 말 대신 일본말 ‘교육’이 똬리를 틀었다. 교육강령이라고도 부르는
조서(1895)에서 “교육은 실로 나라를 보존하는 근본이다.” 등으로 쓰였고 통감부 한국교육개량안(1905)
이나 조선총독부 조선교육령(1911)으로 널리 퍼져 21세기인 오늘까지도 ‘배움부’가 아닌 ‘교육부’처럼
아무 생각 없이 널리 써 온 것이다. 스스로 묻고 따짐을 거치지 않았다. 아직도 우리는 그저 ‘敎育(쿄오
이쿠)’이란 일본말을 빌려 쓰는 셈이다. 왜 ‘에듀케이션(education)’을 한국말로 뒤쳐 쓰지 않는가?
21세기 대한민국은 왜 교육/학습사회에 머물러 있을까?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학교교육을 펼친 뒤 온
겨레는 20세기 전반기 빼앗긴 나라 황국신민(국민)학교 교실에서 ‘교육/학습’을 해야 했고 ‘교육과정’은
조선교육령’(1911)에서 보듯이 애초부터 겨레얼(민족정신)을 없애려 했다. ‘국ㆍ검정 교과서’와 ‘닫힌 물
음’의 ‘한 줄 세우기’ 경쟁시험으로 ‘나 세우기’ 배움을 누리지 못하고 놓쳤다.
그런 탓으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누구 할 것 없이 ‘공정성’과 ‘객관성’이란 ‘줄세우기’ 주술에 얽매인
채 ‘각자도생’으로 의대, N수생, 일타강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.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. 대한민국
이 ‘나라다운 나라’가 되는 바탕엔 집안, 마을, 학교, 나라에서 ‘교육’을 벗어나 ‘배움’을 새롭게 일으킬 때
공부에는 교육, 학습, 배움의 여러 차원이 있다. ‘교육’이 정해진 답을 구하는 것이라면 ‘학습, 배움’은 다
시 닫힌 물음의 학습과 열린 물음의 배움으로 가를 수 있다. ‘닫힌 물음’의 답은 ‘책 안’에서 ‘학습’하여